::: 영안장로교회 :::
[2019년 2월 1주차 3부예배 - 전인적인 치유가 필요합니다 (출 15:22~26)]
::: 2019.02.10 :::

전인적 치유가 필요합니다. (출15:22-26)

복잡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상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육체적인 상처만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적인 상처, 가정의 상처, 여러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상처 등 내면에 상처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이런 상처들을 치료받아야 된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정신과 육체만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치유가 필요하다. 모든 삶에 영역에서 치유 받아야 할 것이 많다. 이것을 전인적 치유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치유를 위해서는 때때로 아픔이 동반할 때가 있다. 젊은 목사님의 고백이다. 사랑스러운 자녀가 입술에 염증이 생겨서 병원에를 갔더니 소포농증 이라고 하더란다. 의사가 어린아이 이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피부에 약을 발라 주리라고 생각을 했는데, 의사는 핀셋을 가지고 별안간에 어린 아이 입술에서 피부 껍질을 잡아 뜯어내더란다. 빨간 속살이 나오면서 아이는 자지러지듯 우는 것이다. 당황해서 어쩔줄을 모르고 있는데, 의사가 냉정하게 하는 말이, 피부 껍질이 떨어져야 약이 피부 속으로 들어가서 치료가 됩니다. 며칠 있으면 나을 겁니다. 의사의 말대로 며칠이 지나니까 치료가 되더란다. 그렇다. 일순간에 고통만을 면하는 것이 치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오히려 병을 더 키워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치료 받아야할 상처는 대개 아픔 없이 치료가 되지 않는다. 심한 경우는 칼을 대야만 치료가 되는 수술의 경우도 있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악습관을 버리기 위해 치러야할 대가가 있다. 신앙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끊어야 하는 아픔이 있기도 하다. 개인의 영혼과 공동체의 상처를 치료함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원리이다. 오늘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서 사흘 길을 가는 동안에 물이 없었다. 마라에 도착을 했을 때 우물을 발견했다. 이들은 정신없이 그 물을 먹었는데 이 물이 쓴 물이었다. 먹자마자 복통이 일어나고 고통이 찾아왔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적을 체험했는가? 10가지 재앙 속에서도 고센 땅에 머물고 있던 자신들을 지켜 주셨던 일들, 유월절 양의 피로 바로의 마음을 꺾고 출애굽 시킨 사건,(출12장), 광야를 지나면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인도하는 것을 경험한 일들(출13:21-22), 홍해 앞에서 하나님이 밤새도록 동풍을 일으켜서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신 사건 등(출14:21), 바로 3일전의 기적이다. 이들은 수없는 기적을 경험했다. 그런 이들이 눈앞에 고통이 생기니깐, 하나님을 찾지 않고 원망부터 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라. 이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수없는 기적을 눈으로는 체험 했지만 마음에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똑같은 환경에서 모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부르짖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모세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주시고 답을 주셨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문제를 만날 때, 모세같이 하나님을 찾는 모습인가? 원망부터 시작하는 백성들의 모습인가? 기도하는 모세를 통해 한 나뭇가지를 지시하시면서 쓴물에다 넣으라고 말씀 하셨다. 하나님이 지시한 나뭇가지를 넣으니 즉시, 쓴 물이 단 물이 되어서 물을 먹고 기력이 회복이 되었다. 그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나 여호와는 치료하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 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육체만이 아니다. 정신과, 영혼까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전인적인 치유가 필요하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여러분도 영육이 강건함을 얻어 비상하며 일어나시길 축복한다.

 

1. 상한 마음을 치료받아야 한다(24절).

백성들의 원망하는 마음이 상했다. 상했다는 말은 부패하고 썩었다는 말이다. 마음이 상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부패한 생각, 부패한 언어, 부패한 행동이 나온다. 원망은 상한 마음에서 표출된 부패한 감정이다.

1)원망은 은혜를 모르는 자가 하는 것이다.

마음과 신앙이 병들고 나면 원망이 많아진다. 원망은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모두를 정신적으로 마음으로 상처를 받게 된다. 대개 감사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일수록 원망이 많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3일 전까지만 해도 수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며, 홍해를 건너왔다. 광야에 들어서면서, 마실 물을 찾다가 마라에서 발견했는데 써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기도해야 할 텐데,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 했다. 감사가 없고 은혜를 모르기 때문이다. 전에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방화범이 잡혔다. 그 사람은 평소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원망을 했단다. 아내를 원망하고 자식을 원망하고 가정이 다 분산되고 깨졌다. 뇌졸중에 걸렸는데 자신의 병이 치료되지 못한 것도 의사의 잘못이라고 의사를 괴롭혔다는 것이다. 늘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단다. 결국 원망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에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키는 방화범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3일전에 홍해를 갈라 기적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그런데 단 삼일 만에 망각하고 문제가 생겼다고 원망부터 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깨닫게 된다.

2)원망하다가 인생이 황폐해진 사건들을 보라.

민21:5-6을 보라. 하나님이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불 뱀을 보내서 물려죽은 사람이 많았다. 원망은 인생의 해답이 되지 못한다. 원망은 더 많은 고통으로 이어진다. 민16:32-33에 고라 자손을 보라. 원망하다가 땅이 갈라져 집과 사람과 재물을 삼켜버렸다. 남은 사람들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태워 버렸다. (1)원망은 인생을 황폐하게 만든다. (2)원망은 나쁜 습관을 만든다. (3)원망은 불뱀을 끌어 들이는 것이다. (4)영혼을 병들게 한다. (5)하나님과의 은혜의 통로가 막힌다. 원망을 버리고, 감사를 회복하시길 축복한다.

 

2. 마라 같은 삶에서 치유 받아야 한다(23절).

마라는 쓰다는 뜻이다. 또한 괴로움 이란 의미로 사용되엇다. 룻1:20-21에 나오미가 베들레헴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갔지만, 그곳에서 남편 잃고, 두 아들을 잃었다.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니, 사람들은 나오미가 왔다고 반길 때, 울며 하는 고백이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했다. 하나님의 집을 떠나 모압에서 쓰디쓴 괴로움을 당했다는 고백이다. 세상을 살면서 어찌 문제가 없겠는가? 잘되고, 형통한 일만 있는 것 아니다. 실패도 있고, 길이 막힐 때도 있고, 복병 같은 장애물을 만날 때도 있다. 신앙은 문제를 만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 하는 것이다. 은혜를 경험한자는 인생의 문제를 만날 때에, 지난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던 은혜를 기억하면서, 무릎 꿇고 모세처럼 기도 하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만들어 가신다. 오늘 말씀도 쓴물을 단물로 치유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분이시다. 사람이 살면서 건강을 잃어본 사람은 건강하게 사는 게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안다. 건강을 잃은 사람은 아름다운 미모가 부럽지 않고, 젊음이 부럽지 않고, 높은 지위나 사회적인 명성이나 소유가 부럽지 않다. 사람은 세 가지의 치유를 통해 전인적인 건강한 삶을 회복해야 한다.

1) 육체적인 치유이다.

성경에는 수없는 치유 사건들이 나온다. 혈류병자 또는 중풍병자, 소경, 앉은뱅이 등 불치의 질병들을 예수님이 치유하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3대 사역이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는 사역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육체의 관리도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은 생명, 건강, 재능. 물질의 소유권자이다. 우리는 관리권자 이다. 건강한 육체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규칙적인 생활, 적당한 운동, 마음의 휴식이라고 한다. 너무 과로하면 쉬어야 한다. 예수님도 사역을 하다 피곤하면 배에서 주무셨다. 또한, 무질서한 생활 습관도 고쳐야 된다. 아무 때나 자고 아무 때나 일어나고 이런 무질서한 생활이 우리의 육체의 건강을 무너뜨린다.

2) 영적인 치유이다.

어느 책에 보니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위궤양. 심장병. 간경화. 우울증 같은 신체적 질병에 치명적인 원인이라고 한다. 잠17:22절에 마음에 평안은 양약이 되어도 마음속에 근심은 사람의 뼈까지 마르게 한다고 했다. 우리는 영적 건강을 유지하려면 마음 관리를 잘해야 된다. 영적인 치유는 곧 마음, 정신, 생각을 먼저, 치유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 마음속에 누구를 몹시 미워하고 있든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든지, 누군가를 증오하고 있다면, 그런 쓴 물이 마음에서 나오고 있는 한, 정신과 영혼과 육체는 건강할 수가 없다.

3) 환경적 치유이다.

전에 성지순례를 하면서 마라에 갔을 때, 가이드가 쓴물을 단물로 바꾼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경을 치료해 주신 것이라는 설명을 할 때에 은혜를 받았다. 맞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와 영혼만이 아니라, 쓴 물을 먹고 고통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단물로 바꿔 주신 것처럼, 우리의 환경까지도 치료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렘33:6에 이 성을 치료하여 낫게 하리라고 하셨다. 우리의 환경을 치료받아야 한다. 가정, 사회, 민족, 삶의 현장이 환경이다. 이런 환경이 치료되어야 한다. 가정이 건강하고, 사회도 건강하게 치료 되어야 된다. 마라 같은 세상에서 쓴물을 단물로 치료해 주신 하나님이, 전인적 치유를 주시길 축복한다.

 

3.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가?(25절)

오늘 여기 두 가지 치료의 방법이 나와 있다.

1) 기도가 치유의 능력이다.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치료의 방법을 하나님이 지시하셨다. 우리는 영적인 문제든 ,육체의 문제든, 환경의 문제든, 어떤 문제든, 해결의 열쇠가 기도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자녀가 문제가 있는가?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는가? 내 영혼이 병들어 있는가? 모세처럼 부르짖는 기도의 무릎으로 하나님을 찾으시길 바란다. 제단 뿔을 부여잡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라. 눈물을 쏟으라. 울면 산다. 세상에서 흘리는 눈물은 가치가 없지만 하나님 앞에 흘리는 기도의 눈물은 그 후에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다. 안식이 있고 열매가 있고, 응답이 있다.

2) 십자가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 (25절中)

하나님은 부르짖는 모세를 향해 음성이 들려왔다. 모세야 저 한 나뭇가지를 꺾어서 쓴 물에다 넣어라. 그래서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넣었더니 그 물이 단물로 바뀌었다. 백성들은 이 물을 먹고 회복되었다. 하나님이 지시한 이 나뭇가지는 신학자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한다. 그러나 저는,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생각해 본다. 마음속에 쓴 물이 나고 있는가? 분노와 미움과 증오, 때로는 절망, 좌절 이런 쓴 물이 우리의 삶을 병들게 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지시한 나뭇가지 이것이 그 중심 속에 들어가야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 속에 들어가면 쓴물이 단물이 된다. 피 묻은 주님의 십자가가 내 중심에 설 때 모든 삶이 치유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만이 치료자이시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삶을 치료 하실 수 있는 치료자가 된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여호와 라파. 우리의 영혼도, 마음도, 육체도, 가정도, 사회도, 치료 하실 수 있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만드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영혼을 치료해 주시기를 원한다. 여러분의 가정을 치료해 주시기를 원한다. 우리의 삶의 현장도, 우리 민족도 하나님의 손에서 치유받기를 축복한다.